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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비핵화 협상’ 노딜 이후

연말까지 북·미 간 비핵화 협상타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애초 연말 시한을 설정한 것은 북한의 자충수다. 트럼프의 입장에선 오히려 그 시한을 무시해야 국내정치적으로 더 유리해지는 패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거꾸로 판단했을 수 있다. 협상 결렬 이후 북한이 도발하게 되면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므로, 그전에 협상에 적극 나설 것으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는 중대한 오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정치문법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 것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 판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다. 의료보험, 경제, 이민 문제 등에 비해 정치권 및 유권자들의 관심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사실 한국 정부도 비슷한 오류를 범해오고 있지 않나 싶다.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일부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선거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협상 타결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에 근거해 평양회담의 여세를 몰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연내에 추진해서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막상 중간선거 일정이 시작되자 트럼프는 자기 선거유세 일정이 바쁘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선거 이후로 한참 미뤘고, 그렇게 해서 잡힌 회담이 금년 2월의 하노이 회담이었다.


이 오판은 지속됐다. 북한이 4월에 연말로 협상시한을 설정하자, 내년도 대선국면에 들어서면 트럼프가 선거일정으로 바빠질 테고, 또 대선에서 본인의 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아니, 한국 정부가 더 적극 나서 연말까지 타결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 판문점에서 트럼프·김정은의 깜짝 만남이 성사되고,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자 이 같은 전망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탄핵 국면이 시작되면서 북핵 문제는 미국 내 정치담론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제 노딜이 가시화되자 미국에선 다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전망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이미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했고, 이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 엔진연료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했다. 위성발사를 가장한 ICBM 발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후로 추정한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식 대북 유화적 접근을 반대하는 세력의 입장에선 북한의 도발을 오히려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이 도발할 경우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도발의 책임을 트럼프에게 돌리기보다는 북한을 비난할 미국 유권자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미 민주당이야 트럼프의 대북 정책 실패를 성토하겠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절대다수의 미국민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해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극히 소수다. 그러니 북한의 도발로 인해 트럼프가 받을 정치적 타격 또한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군사적 수단에 의한 북핵해결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입장에선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한국은 고조될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인해 가장 직접적이고 심대한 피해를 입게 될 당사국이 된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제어해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 이유는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북핵협상의 ‘촉진자’나 ‘중재자’로 자임하면서 수동적으로 제한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있다면, 이들과 다른 “한국의 셈법”도 당연히 필요하다. 여러 전략적 이슈를 복합적으로 연계해서 강온전략을 구사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선의에 기반한 온건평화 전략으로만 일관하지 않나 싶다. 수가 너무 뻔히 읽힌다.


1970년대 미·소 신데탕트가 시작된 계기는 어느 쪽에서 먼저 선제 핵공격을 하든지 간에 공격받은 쪽이 남은 핵전력으로 선제공격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선, 유화적 접근 못지않게 한국의 독자적인 핵억지 군사능력 향상이 필수다. 평화를 위해선 강군을 육성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보다 더 과감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협상에서뿐만 아니라 실질 군사능력 면에서도 북·미에 대한 최소한의 압박능력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경향신문, 12월 20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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