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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미국, 바나나 공화국의 민낯


코로나19 대유행은 사실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는 오히려 악화일로였다. 하루 평균 확진자는 여전히 25만명 이상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누적확진자가 600만명, 사망자도 18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여전히 하루 평균 4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획기적인 백신 개발 이전엔 호전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인구밀도가 한국에 비해 15배 정도 낮은 것을 고려하면 미국 사회가 얼마나 대응을 잘못해오고 있는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상황이 워낙 어렵다 보니, 요즘 미국에선 나라가 어쩌다 “바나나 공화국”으로 전락해 버렸느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넘친다. “바나나 공화국”이란 표현은 소설가 오 헨리가 1904년 중남미 온두라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양배추와 왕들>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바나나 생산 및 수출 관련 독재와 부정부패, 계급착취가 만연한 후진사회를 풍자한 용어였다. 미국이 지금 그 정도로 한심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7월 말 현재, 실업수당을 받는 노동자가 2800만명을 넘고 2조5000억달러(GDP의 13.3%)에 달하는 긴급재난지원자금도 소진돼 추가적 부양책이 없을 경우 경제위축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물론 중산층을 포함, 저소득 취약계층이 더 고통을 받는다.


혹자는 미국 주식시장은 활황이지 않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싶다. 맞다. ‘역대급’ 활황이다. 하지만 주식시장 활황은 미 연준의 천문학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발생한 착시효과다. 실물경제와 따로 움직인 지는 이미 오래다. 오히려 역으로 주식시장 활황은 기존 사회경제적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 가구의 반 정도는 주식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 그나마 주식보유자의 상위 1%가 주식시장 전체의 80% 정도를 소유 중이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미국 사회의 자산불평등은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자산순위 상위 0.1%에 해당하는 16만가구의 부의 규모가 하위 90% 인구의 전체 부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바나나 공화국”이라 자조하는 더욱더 근본적인 이유는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의 사법방해 행위는 탄핵위기 이후 궤도를 이탈한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된 측근들을 사면 또는 감형하는 건 기본이고, 측근 관련 재판에 개입해 검찰의 구형량을 낮추라고 압력을 행사하며, 자신과 가족의 비리를 수사하던 뉴욕남부지검 연방검사를 전격 해임하기도 했다. 사법방해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니 전·현직 검사 수천명이 연판장을 돌리며 법무부 장관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낙선할 경우, 그의 재임기간에 있었던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등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더해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의 정당성마저 도전받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에선 지난 4월 3000만명에 육박하는 유권자가 참여한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지만, 미국에선 상황이 전혀 다르다. 코로나19 창궐을 우려해 많은 주들에서 우편투표가 실시될 예정인데, 트럼프 진영에선 부정투표 가능성이 높다며 우편투표 등 투표 자체를 방해하는 일들을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다. 이 우편투표 논란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지더라도 선거부정을 빌미로 결코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트럼프는 이미 선거 불복 가능성을 에둘러 피력해왔다.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미국인 10명 중 8명 정도는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물론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민주당 편향의 진보 언론매체들에 의한 가짜뉴스고 백색소음이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상생과 연대의 구심점이 필요한 시기에 미국이 패권국으로서의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국 사회제도 및 시스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오류를 시정하려는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당연히 중요한 나라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은 50여개에 달한다. 한국이 50분의 1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미국을 보는 것과 같이 미국에도 한국이 그렇게 중요한 나라는 아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민낯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합리적인 패권국이다. 합리적 논리로 비판하고 반박하는 나라는 존중하지만 무조건 추종하는 나라는 오히려 하찮게 여긴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여전히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시위를 했다길래 든 상념이다.


[경향신문, 8월 28일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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