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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미국, 도대체 왜 이러나?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매년 50억달러를 한국에 요구했다고 한다. 기존 분담금의 5배 이상이다. 5조7000억원이 넘는 돈이니 내년도 국방예산 50조원의 11% 이상이다. 어처구니없는 요구다. 이런 무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외교 압박을 넘어 협박에 가깝다. 한국 내 자중지란을 유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란 의구심을 거두기 힘들다. 동맹 맞나 싶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핵심은 트럼프다. 그는 선대에 이어 평생을 부동산업자로 살았고, 대통령으로 출마하기 직전까지 13년 동안 리얼리티 TV쇼도 진행했다. 세상만사를 돈으로 치환해 보고, 흥행성에 집착하는 이유다. 이번에 한국에 요구하는 50억달러도 트럼프가 직접 지시한 걸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값을 높게 불러 거래의 판을 흔드는 그의 비즈니스 흥정 수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힘의 비대칭을 활용한 갑질식 협상술이다.


그러나 비난에만 그쳐서는 안된다.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정치구호로 당선이 됐는데, 이 “위대한” 미국엔 강한 군대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작은정부를 지향하면서도 국방비 지출은 오히려 급격하게 올리고 있다. 내년도 국방비 7280억달러는 2차대전 후 최대 규모다. 반면,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 예산은 30% 이상 삭감해 오고 있다. 힘에 의한 패권유지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 정부들과 달리 과도한 군사개입에 의한 제국주의적 팽창(imperial overstretch)을 경계한다. 탈냉전 이후 지속된 중동개입 전쟁들로부터 피로감을 느끼는 미국민들이 실제 많고, 또 엄청난 국력을 낭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증해 왔다. 이런 비판은 미국 내 경제양극화와 맞물려 폭발력을 더해왔다. 특히 미국 주도의 자유화 경제질서에 의한 제조업 분야에서의 공동화로 인해 중서부 및 남부의 백인, 저소득, 저학력 블루칼라층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트럼프는 이들의 울분과 좌절을 부추겨 당선된 것이고, 당선 후엔 그 울분과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populism) 정치를 해오고 있다.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내·외부의 적을 찾아 이들의 울분과 분노를 쏟아내도록 하고 있다. 그 내부의 적은 불법이민자들이고, 외부의 적은 부상하는 중국 및 부자동맹국들이다. 특히 왜 부자나라 동맹국들을 미국이 보호해줘야 하는가? 라는 수사적 질문에 그의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을 제외한 28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경제규모(GDP) 대비 평균 1.55%의 방위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 두 배 이상인 3.42%를 지출 중이다. 그러면서도 독일에 3만5000명, 이탈리아에 1만3000명, 영국에 1만명 등 6만명 이상의 미군이 여전히 유럽에 주둔한다. 트럼프 정부는 이들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 지출을 최소한 GDP 대비 2%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압박 중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과 일본에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하는 2만8000명의 미군은 일본의 5만5000명, 괌의 6000명 정도를 합쳐 해외주둔 미군 총 17만명의 50% 정도가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 협상을 지렛대로 전시작전권 이양 관련 연합사 및 유엔사 재편 문제 및 인도·태평양 전략에의 한국 참여 유도 등에서 미국의 의지를 관철해낼 것이 확실시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힘으로 상대하려 하면 숙명론이나 구조결정론에 빠지기 십상이다. 미국이 딛고 선 민주주의 원리로 대응해야 하지 않나 싶다. 즉 당당하게 미국에 되물어야 한다. 66년 된 혈맹인 한국이 미국에 똑같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할 경우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미국인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한 자신들의 역사를 지금도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는 나라다. 미국 학생들은 누구나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3년의 보스턴 차(tea) 사건에 대해 배운다. 우리가 3·1독립운동에 대해 배우듯이. 식민모국 영국이 의회에 식민대표자도 없이 차에 대해 과세하려 하자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이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미국 보수세력은 같은 이름을 따서 지난 10여년간 ‘Tea Party 운동’을 벌여오고 있고, 이들이 지금 공화당의 핵심세력이 되어 있다. 그런 공화당 정부가 국회도 거치지 않고, 기존 협정의 재해석만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500% 이상 올려달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인 것이다. 이건 미국 사회가 딛고 선 민주주의 원리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경향신문, 11월 29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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