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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거위를 살려야 황금알을 낳는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영국시인 T S 엘리엇이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스페인독감’(1918~1920)으로 죽은 자들을 묻으며 맞는 4월의 처연한 슬픔을 표현한 첫 구절이다. 당시 세계인구 5000만명 이상이 죽었고 그도 부인과 함께 독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다.


한 세기가 지난 2020년 4월. 세계는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2%에 해당하는 72억명이 사회적 이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한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최소 1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이 10만명이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유럽은 사망자 수가 이미 5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예외주의’ 의식이 초기 선제방역을 소홀히 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바이러스엔 경계와 구분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분명 성공적인 방역을 해오고 있다. 초기 중국발 입국자 차단 관련 논란이 있지만, 올림픽을 이유로 검사 자체를 어렵게 한 일본이나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한 중국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생활방역으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싶다. 이젠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그 절박한 심정으로 경제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사실 자부심이나 자신감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나라에 있어서나. 지금과 같이 미증유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소중하다. 희망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한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니던가!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더 공급하고 확대재정 정책을 실시하는 일련의 그 모든 조치들은, 결국 경제 관련 심리에 긍정적인 변화를 미쳐야만 효과가 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정부의 경제위기 대처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경기부양책 규모도 작고 집행도 더디다. 지난 3월17일 통과된 추경예산이 11조7000억원인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불과하다. 24일 결정된 비상금융조치 100조원을 합쳐도 GDP의 5.8%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들과 미국은 고용유지, 긴급재난지원 및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GDP의 10%에서 30%에 이르는 초유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켜 이미 집행에 들어간 상태다. 초기 선제방역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정치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그만큼 현 경제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균형재정의 오랜 전통을 깨고 GDP 30%에 달하는 1조1000억유로(약 1500조원)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집행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선 지급, 후 처리’라는 원칙 아래 단 3일 만에 독일 내에서 경제활동하는 모든 내·외국인에게 긴급재난자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재정건전성 신화가 강고하다. 이해는 된다. 국가재정법에서도 재정건전성은 제1의 원칙이다. 또 가깝게는 총선이 있고, 1997년 외환위기부터 1960~1980년대에는 외국 차관에 의존해서 경제성장을 일궈오다 보니 국가부채 관련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난 1월 말 기준 1283조원 규모의 국고채 시장 상장총액 대비 외국인 비중은 7%에 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한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단기 순대외채권은 4400억달러에 육박한다. 상당 기간 정부부채 누적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국내 금융권의 국고채 추가매입 능력도 충분해 보인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9년 말 예금은행의 총예금이 1600조원에 달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만 900조원가량 늘었다.


가계와 기업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점증할수록 현금 및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 확보에 더 몰두하게 된다. 가계자산의 75%, 국부의 90%에 육박하는 비유동자산인 부동산의 비율이 현격히 높은 한국의 경우엔 위기가 시작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초기에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산정된 공적자금 40조원의 4배가 넘는 자금이 투여됐다. 초기의 과감한 재정투입이 그나마 최종 경제비용을 줄인다.


대공황급 위기는 이미 와 있다. 이 위기는 한국 내 정치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이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셈이다. 보다 강력한 선제대응으로 방역 성공의 자부심을 경제위기 극복으로 이어가게 되길 바란다.


[경향신문, 4월 9일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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