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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멈춰 서고 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적 수준의 총체적 경제위기로 전이 중이다. 세계 경제의 신경망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 금융시장은 완벽한 패닉 상황에 빠져들고 있고, 중국을 축으로 하는 전 세계 생산공급망은 당분간 위기 이전으로 복구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역의존도가 GDP의 70% 육박하는 우리로선, 공급과 수요 모두에 걸쳐 미증유의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단은 방역이 최선의 경제안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현재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전 세계 코로나19 확산 추세를 보면, 사회적 이동을 멈춤으로써 그 전파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단기간 내에 치료제 및 백신이 개발되기는 어려운 국면이다. 위기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최악의 위기를 상정하고 가용한 모든 재정·금융정책 수단을 동원해 선제적으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쓰나미가 몰려오면 오히려 그 방향으로 담대하게 노를 저어 나아가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 조치들의 곁가지 단점들이 아니라 큰 장점을 보고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르핀은 아편의 일종이지만 잘 쓰면 사람을 살린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의 재난기본소득 논의는 시의적절하고 또 긴요하다.


사실 우리의 고용구조는 내외부 경제충격에 대단히 취약한 구조다. 같은 경제수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 비율이 현격히 높다. 2017년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36.8%에 해당하는 636만명이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이들 중 291만명이 자영업자이고 무급 가족종사자가 70만명에 육박한다. 업종별로는 절반이 넘는 인원이 도소매업 (161만명), 숙박 및 음식점업(136만명)에 종사한다. 임시직 및 일용직 노동자의 숫자도 230만명을 상회한다. 이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가장 먼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으리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이미 지난 2월의 실업급여 청구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경제위기는 아직 그 시작단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다행히 여야 정치권에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결국은 포퓰리즘, 매표행위에 해당하지 않느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상황이긴 한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적기다. 재원마련 및 지급방식 등에 대해 여야 정치권이 더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해서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방식이 된다면 이보다 더 민주적일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실기하게 된다. 다가올 총선과 이후 21대 국회 개원 때까지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 그사이 세계 경제는 팬데믹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21대 국회에서도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재원마련과 관련해서는 한국은행이 일정량의 정부채권을 매입해 주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 및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은 정부채권을 직접 매입해 주는 양적완화 정책을 적극 실시해 왔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아직 양적완화 정책을 취해 오지 않았다. 여력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재정승수(fiscal multiplier)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병행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처럼 만성적이지 않고, 한시적인 조치라면 분명 실보다 득이지 않나 싶다.


미국 연준의 경우엔 2008년 금융위기 시, 미정부채권 구매 및 유동성 공급을 위해 편법까지 동원했었다. 연준이 이자율이 제로에 가까운 자금을 월가 금융기관들에 빌려주고, 이 월가 금융기관들이 평균이자율 3%가 넘는 미정부채권을 매입하도록 유도해서, 그 이자차익만으로 무려 7조달러가 넘는 자금이 월가 금융기관들에 돌아가도록 한 선례도 있다. 물론 연준이 직접 매입한 미국채액만도 2조달러어치를 상회했다.


비상상황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실제 우리 정부도 1997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당시 금융권 부실해소 및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32%에 해당하는 공적자금(168조원)을 투입했고, 작년 말까지 70% 정도가 회수됐다. 2019년의 경제규모로 환산하면 60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여한 것이다. 당시 조세부담 인상으로 이어진다며 강한 저항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미래로부터 돈을 빌려와 투입한 건 실보다 득이 더 컸다.


이번의 경제위기는 내버려두면 시장이 알아서 오류를 시정하는 통상의 ‘시장실패’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담대한 발상으로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한시적 재난기본소득은 그 첫출발이 될 수 있다.

[경향신문 3월 12일, 2020]

선거의 해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어디 있으랴마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역대급’으로 악화되는 정치·경제 양극화 양상을 고려하면 사즉생(死卽生)의 전쟁 같은 선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11월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 및 상·하원 선거는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외교정책과 향후 세계전략도 영향을 받을 테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최우선 관심사는 물론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다. 대부분 박빙 승부를 예상하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1% 이내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이들 3개주와 플로리다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트럼프의 주요 정치적 결정들이 이들 경합주에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외교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무력충돌은 트럼프가 이민자, 경제 문제에 더해서 종교 문제를 선거전략으로 꺼내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대 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다. 2019년 조사에서도 성인의 65% 이상(가톨릭 20%)이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복음주의 개신교계다. 인구 4명 중 1명이 복음주의 신자로 추산되고 이들 절대다수는 백인으로 중남부주들에 밀집해 있다. 여기에 보수적인 가톨릭계, 유태계 일부가 결합되어 현재 공화당 보수정치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광적인 지지층과 겹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폭살에 대해 부정적, 회의적이다. 특히 공격 시기가 공교롭게도 상원의 탄핵심판 직전이다. 이란 및 중동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략도 혼선을 드러내고 있다.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철군을, 이란 및 이라크에는 군을 증파하고 있다. 물론 이란으로부터의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이렇게 공격받을수록 그의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 실제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되는 공화당원의 95%는 여전히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관점과 행동이 선과 악의 명징한 이분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보수주의자들은 십자군 원정을 포함, 천년전쟁의 연속선상에서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 간의 싸움을 세계사 해석의 기본 축으로 본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이성의 싸움에선 늘 신앙이 승리해 왔다고 믿는다. 이들에겐 이슬람문명권의 중심국이 되려는 이란과의 싸움은 역사의 필연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이란을 다루는 방식은 북한을 상대해 온 방식과 판박이다. 그는 북한이 경제제재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왔듯,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해야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북한이나 이란은 미국의 실제 의도가 그들 체제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응한 건 그들이 미 본토에 도달 가능한 핵미사일 능력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인식해온 듯하다. 좁히기 쉽지 않은 인식의 간극이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의 북·미 간 합의들을 먼저 깬 것은 미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의 정권교체나 의회권력의 교체 이후 북한과의 합의는 결렬되어 왔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에서의 경수로 2기 건설 약속, 2000년 10월의 북·미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공동합의문, 6자회담(2003~2007)을 통한 9·9합의, 2·13합의, 10·3합의의 불이행은 미국의 국내정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트럼프가 정권교체 후 2015년 이란과 맺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검토와 판단을 끝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다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2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통해 맺은 협정도 관련국과 상의 없이 폐기한 나라가 미국이다.


결국 이란이나 북한 모두 미국의 대선 및 상·하원 선거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선 선뜻 핵협상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부결속을 다지며 장기항전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서두르는 쪽이 더 잃는 형국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랬다고, 지속 가능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교한 협상전략에 힘을 더 쏟을 때다.


경향신문, 1월 17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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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까지 북·미 간 비핵화 협상타결은 불가능해 보인다. 애초 연말 시한을 설정한 것은 북한의 자충수다. 트럼프의 입장에선 오히려 그 시한을 무시해야 국내정치적으로 더 유리해지는 패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거꾸로 판단했을 수 있다. 협상 결렬 이후 북한이 도발하게 되면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므로, 그전에 협상에 적극 나설 것으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는 중대한 오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정치문법을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 것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 판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다. 의료보험, 경제, 이민 문제 등에 비해 정치권 및 유권자들의 관심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사실 한국 정부도 비슷한 오류를 범해오고 있지 않나 싶다. 작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일부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선거에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협상 타결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에 근거해 평양회담의 여세를 몰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연내에 추진해서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막상 중간선거 일정이 시작되자 트럼프는 자기 선거유세 일정이 바쁘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선거 이후로 한참 미뤘고, 그렇게 해서 잡힌 회담이 금년 2월의 하노이 회담이었다.


이 오판은 지속됐다. 북한이 4월에 연말로 협상시한을 설정하자, 내년도 대선국면에 들어서면 트럼프가 선거일정으로 바빠질 테고, 또 대선에서 본인의 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아니, 한국 정부가 더 적극 나서 연말까지 타결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 판문점에서 트럼프·김정은의 깜짝 만남이 성사되고,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하자 이 같은 전망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탄핵 국면이 시작되면서 북핵 문제는 미국 내 정치담론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제 노딜이 가시화되자 미국에선 다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전망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이미 크리스마스 “선물”을 예고했고, 이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 엔진연료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했다. 위성발사를 가장한 ICBM 발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후로 추정한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내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식 대북 유화적 접근을 반대하는 세력의 입장에선 북한의 도발을 오히려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이 도발할 경우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심각한 타격을 줄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도발의 책임을 트럼프에게 돌리기보다는 북한을 비난할 미국 유권자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미 민주당이야 트럼프의 대북 정책 실패를 성토하겠지만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절대다수의 미국민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통해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극히 소수다. 그러니 북한의 도발로 인해 트럼프가 받을 정치적 타격 또한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군사적 수단에 의한 북핵해결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입장에선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한국은 고조될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인해 가장 직접적이고 심대한 피해를 입게 될 당사국이 된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제어해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 이유는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북핵협상의 ‘촉진자’나 ‘중재자’로 자임하면서 수동적으로 제한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있다면, 이들과 다른 “한국의 셈법”도 당연히 필요하다. 여러 전략적 이슈를 복합적으로 연계해서 강온전략을 구사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선의에 기반한 온건평화 전략으로만 일관하지 않나 싶다. 수가 너무 뻔히 읽힌다.


1970년대 미·소 신데탕트가 시작된 계기는 어느 쪽에서 먼저 선제 핵공격을 하든지 간에 공격받은 쪽이 남은 핵전력으로 선제공격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선, 유화적 접근 못지않게 한국의 독자적인 핵억지 군사능력 향상이 필수다. 평화를 위해선 강군을 육성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보다 더 과감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협상에서뿐만 아니라 실질 군사능력 면에서도 북·미에 대한 최소한의 압박능력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경향신문, 12월 20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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