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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코로나19발 방역과 경제위기는 이 고전적 질문을 재소환하고 있다. 온통 불확실한 것 천지인 상황은 더 ‘큰 정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가 장기화된다고 할 경우, 세계질서 또한 그 이전보다 더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국면에선 큰 정부가 아니라 외려 무능한 정부가 문제다. ‘한국판 뉴딜’을 천명한 배경이 아닌가 싶다.


뉴딜(New Deal, 1933~1937)은 분명 참고할 만한 역사적 선례다. 1929년 대공황에 대응해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전체주의로 흐르지도 않고, 소련식의 사회주의로 나아가지도 않으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성공적 모델이기 때문이다. 물론 뉴딜의 경제적 성공 여부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뉴딜을 통해 미국사회의 노동, 금융, 복지 관련 주요 제도들의 원형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몇 가지만 꼽아봐도,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실업보험, 과당경쟁 방지를 위한 공정거래제도, 빈민구제제도, 연금 등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가 법제화돼서 오늘에까지 이른다. 당시 설립된 기구들 중 현존하는 것 또한 즐비하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증권위원회(SEC), 전국산업노조(CIO), 연방주택공사(FHA), 연방곡물보험공사(FCIC) 등등. ‘작은정부’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의 일이다.


뉴딜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신속성이다. 주요 15개 입법조치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단 100일 만에 이루어졌다. 1929년 10월에 시작된 대공황 위기가 3년이 넘도록 악화 상태여서 절박하기도 했다. 실제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던 해 실업률이 25%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각계각층의 인재들을 모아 브레인집단(Brain Trust)을 만들어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뉴딜러라고 불리는 이들의 회고록을 보면 자기 생에서 가장 열심히, 또 가장 행복하게 일했다는 기록이 많다. 신명나게 일했다는 얘기다. 그 신명이 사회분위기를 공포에서 희망으로 바꿔냈던 것이다.


지금 미국의 경제위기는 1929년 대공황급 위기가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3월 중순 이후 단 6주 만에 30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1000만명이 넘는 기그(gig)경제 종사자들의 실업까지를 고려하면 실업률은 이미 20%를 훌쩍 넘는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고용이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다르지만, 미국의 대규모 실업사태가 한국에서도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상정하고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나 싶다.


한편 속도 못지않게 방향성도 중요하다. 뉴딜은 저소득 취약계층의 관점에서 노동과 복지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사회주의라고 비판을 받고, 국가재건청(NRA)이 연방대법원에서 위헌으로 판정되어 2년 만에 폐지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을 보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려 했다. 일례로 뉴딜 시기 최고소득세율은 79%까지 올라서 1980년대 초까지 7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사실 뉴딜의 사회보장, 공적부조 등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인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대 뉴욕 최고의 정치가문 출신이었지만 대통령이 되기 12년 전인 39세 때부터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마비돼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사회의 주류 중 주류로 살았지만 가장 취약한 비주류 계층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 그는 자기계급에 대한 “반역자”로 불렸다.


또한 주목할 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독한 실용주의 정치다. 특정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이상적 아이디어와 정치현실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예컨대, 인종차별 문제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 가장 큰 분파를 형성하던 남부 17개주는 백인우월주의가 강고했다. 인종차별 문제를 눈감아주고, 뉴딜 관련 주요 법안들을 맞바꿔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결과적으로 흑인 및 소수 인종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정부 혜택을 받는 길이 열렸다.


뉴딜 기간에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과 의회권력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뉴딜 시행 2년 후인 1935년 선거에선 더 큰 압승을 거둔다. 경제가 별로 나아지지도 않았는데, 유권자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에 투표한 것이다. 한국도 현재 비슷한 상황이다. 21대 국회 100일을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경향신문, 5월 7일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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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영국시인 T S 엘리엇이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스페인독감’(1918~1920)으로 죽은 자들을 묻으며 맞는 4월의 처연한 슬픔을 표현한 첫 구절이다. 당시 세계인구 5000만명 이상이 죽었고 그도 부인과 함께 독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다.


한 세기가 지난 2020년 4월. 세계는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2%에 해당하는 72억명이 사회적 이동에 제한을 받고 있다 한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최소 1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말이 10만명이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 전사자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유럽은 사망자 수가 이미 5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예외주의’ 의식이 초기 선제방역을 소홀히 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바이러스엔 경계와 구분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분명 성공적인 방역을 해오고 있다. 초기 중국발 입국자 차단 관련 논란이 있지만, 올림픽을 이유로 검사 자체를 어렵게 한 일본이나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한 중국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생활방역으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싶다. 이젠 사람을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그 절박한 심정으로 경제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사실 자부심이나 자신감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나라에 있어서나. 지금과 같이 미증유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소중하다. 희망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한 것이 인간의 역사 아니던가!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더 공급하고 확대재정 정책을 실시하는 일련의 그 모든 조치들은, 결국 경제 관련 심리에 긍정적인 변화를 미쳐야만 효과가 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정부의 경제위기 대처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경기부양책 규모도 작고 집행도 더디다. 지난 3월17일 통과된 추경예산이 11조7000억원인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0.6%에 불과하다. 24일 결정된 비상금융조치 100조원을 합쳐도 GDP의 5.8%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국가들과 미국은 고용유지, 긴급재난지원 및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GDP의 10%에서 30%에 이르는 초유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켜 이미 집행에 들어간 상태다. 초기 선제방역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정치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그만큼 현 경제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균형재정의 오랜 전통을 깨고 GDP 30%에 달하는 1조1000억유로(약 1500조원)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집행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선 지급, 후 처리’라는 원칙 아래 단 3일 만에 독일 내에서 경제활동하는 모든 내·외국인에게 긴급재난자금을 지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재정건전성 신화가 강고하다. 이해는 된다. 국가재정법에서도 재정건전성은 제1의 원칙이다. 또 가깝게는 총선이 있고, 1997년 외환위기부터 1960~1980년대에는 외국 차관에 의존해서 경제성장을 일궈오다 보니 국가부채 관련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난 1월 말 기준 1283조원 규모의 국고채 시장 상장총액 대비 외국인 비중은 7%에 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한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단기 순대외채권은 4400억달러에 육박한다. 상당 기간 정부부채 누적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국내 금융권의 국고채 추가매입 능력도 충분해 보인다.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9년 말 예금은행의 총예금이 1600조원에 달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만 900조원가량 늘었다.


가계와 기업은 경제적 불확실성이 점증할수록 현금 및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자산 확보에 더 몰두하게 된다. 가계자산의 75%, 국부의 90%에 육박하는 비유동자산인 부동산의 비율이 현격히 높은 한국의 경우엔 위기가 시작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충격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초기에 구조조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산정된 공적자금 40조원의 4배가 넘는 자금이 투여됐다. 초기의 과감한 재정투입이 그나마 최종 경제비용을 줄인다.


대공황급 위기는 이미 와 있다. 이 위기는 한국 내 정치일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이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셈이다. 보다 강력한 선제대응으로 방역 성공의 자부심을 경제위기 극복으로 이어가게 되길 바란다.


[경향신문, 4월 9일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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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세계질서는 어느 지역이 선도해 갈까? 1990년대를 관통했던 화두 중 하나다. 당시 상당수 학자들은 유럽연합(EU)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 1월 말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이런 전망이 무색해졌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나아가 EU의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다시 던지는 걸까?


경제적으로만 보면 영국이 더 잃는 선택이다. EU의 역내 무역규모는 영국의 10배에 달하고, 영국은 무역의 50%가량을 EU시장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최악의 경우 경제규모가 8% 이상 축소될 수도 있다고 본다.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왜 떠나는 걸까? 핵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EU에 남을 경우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빠지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문제를 빌미로 정치적 반격을 가한 것이다.


영국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8년 당시 EU 출신자 360만명과 비EU 출신자 574만명이 영국에 거주 중이다. 인구 대비 각각 5.5%와 8.8%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으로 치자면 665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EU 출신자 중에서는 폴란드 및 루마니아 출신이 폭증해서 각각 83만명과 40만명에 달했다. 문제는 증가 속도였다. 2008년 이후로 연평균 30만명 이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배경 원인은 EU의 회원국 확대 조치였다. EU는 2004년에 폴란드, 헝가리를 포함해 동유럽국가 10개국, 그리고 2007년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 유럽시민권자가 확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결정의 기저엔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는 EU 지도자들의 섣부른 자신감이 내재해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 EU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단일통화 도입 등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동유럽까지 합칠 경우 미국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시장확대 과정에서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은 자본이나 재화의 이동과 달리 더 세심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시장만능주의 사고가 EU 지도자들의 전략적 결정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2012년의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동유럽 인구이동 및 난민 유입이 맞물리며 유럽 전역에 걸쳐 극우정치세력이 창궐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유럽 전역에 걸쳐 불법체류자가 400만명 규모로 급증했고, 이들 가운데 4명 중 1명 정도가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브렉시트는 그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EU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두 갈래 상반된 길에 직면해 있지 않나 싶다. 하나는 정치통합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현재 EU의 장기침체나 지역 및 국가 간 불균형 발전 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느슨한 국가연합으로는 힘들다. 그 상징적 예가 EU의 1년치 예산규모다. 회원국 정부들 총예산의 5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금융정책을 제외한 주요 거시경제 및 사회복지 정책들도 여전히 회원국 정부들이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다른 길은 시장통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자본과 노동에 대한 초국적 이동 제한과 유로화의 폐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유로화 도입 이후 환율 위험이 사라지면서 역내 초국적 자본의 이동 양과 속도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유로권 전체가 거대한 부채연결망으로 구조화되어 왔다. 장기침체에 시달리는 핵심 이유다.


두 길 모두 결코 간단치 않다. 시장통합을 제한하는 조치들은 EU의 존립근거 자체를 허무는 격이고, 정치통합은 회원국들이 주권을 더 양도해야 하는 일이다. 진퇴양난이다. 상당기간 혼란과 정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초국적 시장통합은 그에 걸맞은 정치사회적 통합과 상보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장래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이나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통해 시장통합을 도모한다고 할 경우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문제다.


특히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에 대해선 면밀한 제도적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2018년 말 기준 체류 외국인이 약 236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4.6%, 불법체류자는 36만명에 달한다.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는 당위적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단계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판 극우정치와 사회·정치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 전에.

[경향신문 2월 13일,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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