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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른 세밑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남 탓과 악다구니도 늘게 마련이다. 반면 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의 진가도 더욱 도드라지게 된다. 올 한 해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에서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아닌가 싶다.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사실 잘 몰랐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마음 한쪽에 아이돌 육성시스템과 그 문화가 확산시키는 외모지상주의 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지난 11월 하순 어느날, 차를 몰고 가며 듣던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이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영어가 조금 섞여 있긴 했지만 분명 우리말 노래였다. 귀가 쫑긋해졌다.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팬데믹으로 방 안에 갇혀 세상과 격리돼 우울감과 슬픔에 빠져있을 사람들을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발매 1주일 만에 빌보드 앨범 및 싱글차트 1위곡이라고 했다. ‘우리말 노래가 빌보드 1위를 했다고?’ 순간 멍해졌다.


찾아보니 11월 하순에 발표한 Be란 앨범에 수록된 7곡 중 6곡이 우리말 가사 노래들인데, 발매 2주차엔 7곡 모두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35위권 이내에 진입해 있었다. 또한 빌보드 ‘아티스트100’ 차트에 진입한 건 이미 4년이 넘고, 15주째 1위란다. 그 많은 미국 내 가수와 밴드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얘기다. 음반업계 종사자의 투표로 정해지는 그래미상과 달리 빌보드의 이 랭킹들은 오롯이 음반판매량, 온라인 스트리밍 및 라디오 방송 횟수 등 측정 가능한 근거에 의해 산출된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3년이 넘도록 압도적인 1위다. 유튜브상의 BTS 관련 비디오 150개의 총 조회수는 170억뷰가 넘고, 매일 평균 1800만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다. 가히 BTS 천하다.


도대체 인기의 비결이 무엇일까? 흔히들 골수팬층인 ‘아미’의 존재를 언급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그 ‘아미’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걸까 궁금해졌다. 이들의 노래와 비디오를 찾아 듣고 보기 시작했다. K팝의 상징이 된 칼군무, 그들의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흥겹다. 생김도 미남들이다. 하지만 이런 건 다른 K팝 아이돌그룹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뭐가 다른 걸까? 잠정적인 결론은 이들은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한다는 점 아닐까 싶다.


이들은 데뷔 초부터 네 꿈은 뭐냐고 묻고, 누가 뭐라 해도 난 나를 사랑하며 내 꿈을 열심히 좇을 것이며, 고통이 다시 찾아와도 기꺼이 극복해 주겠다고 노래해 오고 있다.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몰라서 두렵고 떨리지만 감당해낼 거라고도 얘기한다. 팬들은 이들의 칼군무 연습 비디오를 보며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해 이들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하고, 멤버 간의 일상과 무대 뒤 모습을 보며 이들의 사랑과 우정, 가족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영감을 받는다. 각자의 꿈을 좇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전파하는 ‘아미’가 된다. 수평적 의사소통을 통한 선한 영향력이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낳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성공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보편적 감성 코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거기에 맞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저 자신들이 느끼고 고민하는 바를 진솔하게 표현해왔기 때문에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더 강한 공감과 호소력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인종, 국적, 성별, 나이 등 무수히 많은 구분짓기와 차별들에 갇혀 산다. 하지만 그 표피적 차이를 살짝 뒤로하고 보면 나의 감성과 너의 감성이 크게 다르지 않고, 그 감성 영역엔 민족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구분도 굳이 필요가 없다. 내가 곧 세계고, 세계가 곧 나다. 차이와 차별에 앞서 우리 모두는 서로 공유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K팝은 주로 미국의 대중음악을 모방하면서 성장했다. 랩과 힙합 장르는 더더욱 그렇다. 아류였던 것이다. 한국의 다른 분야들도 비슷하다. 선진국들의 제도와 문물을 빨리 수입·모방해서 추격한다는 모델이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적 비교우위 평가에 늘 연연해왔다.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비교해 서열화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서 잊고 산 건 나, 우리들 자신의 얘기다. 이젠 개인이나 사회나 남들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저마다 자신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사실 선도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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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거가 끝났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많은 유권자가 참여를 했고 관심 또한 높았다. 하지만 결과는 미국사회의 분열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특히 트럼프대통령의 선거결과 불복은 통합을 기치로 내 건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또한, 내년 1월 5일의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지형은 심대하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기 베라의 말을 빌리자면,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건 트럼프지지세력의 결집력이다. 바이든이 570만 표 이상의 차이로 승리했지만, 트럼프도7,340만 표 이상을 득표했다. 역대 최다득표 낙선이다. 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바이든이 좋아서 찍은 표 못지 않게 트럼프에 반대하기 위해서 바이든을 찍은 표도 상당했다. 특히 상대후보에 반대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응답한 투표자가 5명 중 1명 이상 꼴인데, 이들 중 트럼프에 반대하기 위해 바이든을 찍었다는 비율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2배 이상 높았다. 물론 상대후보 견제가아니라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아서 표를 던졌다는 비율에서도 트럼프가 훨씬 앞선다. 미국민의 30% 안팎이 스스로를 공화당지지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는 재임 기간 내내 평균 90% 이상으로, 역대 어느 공화당출신 대통령혹은 대선주자 보다 줄곧 높았다. 7,300만 표 이상의 득표가 결코 우연은 아닌 것이다.


사실 미국의 현재와 향후 정치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가 왜 이렇게 높은가를 이해해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비윤리적인 행위들은 물론이고, 사법방해와 권력남용, 특히 코로나19 위기로 25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고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 하에서도 그의 코로나 대응에 대해 정치적으로 응징하기 보다는 더 강한 지지를 보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어 오고 있다. 최근의 선거불복까지를 포함해서 통상의 상식과 논리, 정치문법을 벗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미국 사회와 역사를 관통해 온 백인 인종주의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역학을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다. 2019년 미국의 인구통계조사에 의하면 스스로를 백인으로 답한 비율은 전체 인구의 60% 정도다. 1960년대에 백인 비율이 90%에 육박했던 것에 비하면 30% 정도 비율이 떨어진 것이다. 백인 혼혈 등을 모두 합쳐도 백인 인구는 전체의 76% 정도로 줄어 들었다.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계 등 소수인종의 눈에 비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백인위주 사회다. 하지만 백인들의 눈에 비친 미국사회는 그들의 상대적 지위가 빠르게 쇠락하는 사회다. 특히 히스패닉계의 급격한 성장은 백인계층에게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워낙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히스패닉계 인구는 1960년대 초반에만 해도 미국 사회에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폐지한1965년 이민법 개정을 계기로 늘어나기 시작해서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현재 6천만 명을 상회한다. 전체인구의 18.5%에 달해서 흑인계 (13.4%)보다 더 큰 인종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대부분 같은 종교와 언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백인계층이 느끼는 위협감은 상당하다. 미래가 더 걱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저소득, 저학력 백인계층일수록 히스패닉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계층으로 인식하고, 흑인 저소득층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의 위협감이 과장만은 아닌게, 1994년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결성 이후 다수의 백인, 저학력, 저소득, 제조업 종사자들이 상대적으로 박탈된 사회경제적 위치로 내려 앉았다. 미국정부의 산업통계에 따르면,지난 1997년 이후로 제조업 분야에서91,000개 이상의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된다. 특히 자동차 및 철강업계가 큰타격을 입었는데, 흔히들 말하는 ‘러스트벨트 (Rust Belt)’ 지역이—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위스콘신—이 제조업공동화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왔다. 지난 2016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지역들이 된 이유다.


다른 한편, 보수적인 주류 백인들의 경우 1990년대 이후로 점증해 온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에 큰 위협이 된다고 받아들여 왔다. 인종-성-젠더 문제에 있어서 소수자 차별을 철폐하고 보다 다양하고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사회운동은 보수적 백인세력에게는 미국의 가치, 사회 자체가 망하느냐 마느냐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 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2008년 오바마대통령의 당선은 이들에겐 자신들의 정치적 사망을예고하는 서막으로 받아들여지게 됐고, 이후 백인 극우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미국적 보수주의 가치 보존을 기치로 한 보수시민운동인 “티파티 (tea party)” 운동 등이 거세게 일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높은 지지도는 백인들이 느끼는 이 상대적 박탈감, 절박한 위기의식과 궤를 같이 한다. 트럼프는 “내가 우리 백인들의 이익을 지켜주겠다”는 명확한 멧세지로 화답해온 것이다.


실제 백인들 절대다수는 트럼프가 제창해 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란 정치구호에서 그 미국을 백인으로 치환해서 이해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백인층의 트럼프 지지는 견고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백인계층의 60% 정도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물론 백인남성의 지지도가 백인여성의 지지도에 비해 좀 더 높긴 하지만 그리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다. 흔히들 트럼프 지지계층은 저학력 계층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대학이상 졸업자의 43% 정도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했다. 다만, 대학 이하의 교육을 받은 백인들은 67%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종문제는 미국의 정치, 선거를 관통하는 상수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가까운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남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인종적 통합의 과정이 정치-사회적 갈등 없이 진행될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실제 2008년 서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와 이어진 경제위기는 진보진영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는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이어져 민주당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해 왔다. 이번 미국 대선캠페인에서 부각된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는 운동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진보적 자유주의 흐름의 연장선 상에 있다. 반면, 트럼프의 2016년 당선과 지속적인 높은 지지도는 ‘티파티’로 대변되는 백인 극우 인종주의 보수세력의 공화당내 점증하는 영향력을 반영한 결과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이로 인한 경제위기, 사회갈등 양상은 이 진보적 자유주의와 극우 인종주의간갈등을 폭발적 양상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정치경제, 사회양극화는 바이든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이자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월 초의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는 바이든 행정부의 미래에 특히 중요하다. 하원에선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수성했지만, 상원에선 공화당이 이미 50석을 확보한 상황이다. 조지아주에서 2석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시 겨루게 됐는데, 만약에 공화당이 한 석이라도 이기게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2기 못지 않은 의회와의 첨예한 갈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 대비 그린뉴딜, 대규모 사회-경제 인프라 (SOC) 재건설 투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대비재정부양책 등이 상원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다.


실제 오마바 행정부시기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다수당 지위를 상실하면서부터 쟁점 법안들이 미의회를 쉽게 통과한 적이 없었고, 2012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면서 오바마 정부는 사실상 식물정부 상태로 전락해 버렸었다. 조지아주 상원 재선거 결과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수성할 경우, 비슷한 수준의 첨예한 정치적 갈등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2년 후에 있을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의 주요 공약사항 이행에 제동을 걸면서 지지세력 결속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2년은 극심한 혼란과 갈등의 시기가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불복은 향후 전개될 극심한 정치갈등과 분열의 전주곡이지 않나 싶다.


[통일시대, 민주평통 12월호,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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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은 세계사적 대전환의 해였다. 전환의 시기가 아닌 때가 어디 있으랴마는, 그해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동유럽 공산정권과 소련 붕괴가 시작됐다. 중국에선 두 달간의 톈안먼 반정부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군이 동원됐고 머잖아 중국공산당도 망하리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도 곧 붕괴하리라는 건 필연처럼 보였다. 같은 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제 인류 역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대체할 만한 다른 정치체제의 등장은 불가능하다면서 “역사의 종언”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향후 세계적 수준에서의 이념과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본 것이다.


2020년 11월 현재, 이념과 체제 경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은 오히려 더 압도적으로 강해져 미국과 유럽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해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에너지 및 군사대국이고, 2013년 이후 시진핑과 푸틴이 만난 횟수는 30회가 넘어 중·러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밀착되어 있다. 닉슨 행정부가 중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통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중·소 간 분열을 부추겨 소련을 망하게 했던 그 이이제이 전략에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북한 또한 망하기는커녕 핵무기 보유 강성대국의 꿈에 가까워져 있다. 물론 북·중관계도 밀착 중이다. 김정은 집권 초기의 앙금을 털어내고 4차례 정상회담에 이어 작년 6월엔 시진핑 국가주석이 14년 만에 북한을 국빈 방문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중동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수렴하는 것 또한 요원한 일로 보인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 세계질서를 그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8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14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앞으로 수개월 내에 최소 100만명 이상이 더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엄혹한 상황이다. 1989년과 다른 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취약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선 지금껏 영국의 5만5000명을 포함해 38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미국에서도 26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 상황에 대한 처방으로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복원을 내걸고 있다. 속속 발표되고 있는 외교안보 인사들의 이력을 보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 복원에 깊이 공감하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대중국 견제를 위해 자유시장 원리와 인권,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동맹복원, 가치동맹 강화에 외교정책의 방점이 찍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실행능력이다.


무엇보다도 바이든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이는 건 미국 내 극심한 정치양극화다. 미국 선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결과에 여전히 불복 중이고, 결코 바이든 정부를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마저 높다. CNBC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 7300만명 중 겨우 3%만이 바이든을 정당한 승자로 생각한다. 66%는 결코 결과에 승복하면 안 된다고 답하고 있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공화당을 떠난다면 72%는 공화당을 떠나 트럼프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통합을 기치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숫자다.


이에 더해 상원에선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공산이 크다. 공화당은 2석이 걸린 1월 초의 조지아주 결선 선거에서 1석만 이겨도 다수당이 된다. 이 경우 바이든의 공약사항인 기후변화 대비 그린뉴딜, 대규모 사회·경제 인프라건설 투자, 세금개혁 법안들은 줄줄이 상원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다. 2년 후 있을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공화당은 민주당의 주요 공약사항 이행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면서 지지세력 결속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 2년은 극심한 정치적 갈등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초당적인 외교정책 수립과 집행도 심각하게 제한받을 것이다. 공화당도 반대할 수 없는 가장 보수적인 외교정책이 추진될 가능성 또한 높은 이유다.


다시 한 세대가 지난 2050년에 되돌아본 2020년은 어떤 전환의 시간으로 기록될까? 일시적인 위기 후 반등하는 계기로 기록될까?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은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더욱 수렴해 있을까?


가장 확실한 미래 예측은 원하는 바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정권 차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이 지향하는 세계질서에 가장 부합하는 국제규범과 원칙, 제도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능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도 더욱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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